소강석 목사
▲소강석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가 9일 자신의 SNS에 '덩리쥔과 이선희'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은 월간 「샘터」 3월호에 실렸다.

소 목사는 이 글에서 '첨밀밀'을 부른 대만의 전설적인 가수 덩리쥔과 우리나라의 가수 이선희를 언급하며 "세상에는 덩리쥔처럼 감미롭고 조용한 목소리로 감동을 선사하는 설교자도 있고, 이선희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때론 카리스마 넘치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리는 설교자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음향이 잘 갖춰지고 정돈된 실내에서 부드럽고 잔잔하게 이야기를 전하는 설교도 하지만 넓은 체육관이나 장외에서 깊은 울림과 굵고 거친 음성으로 설교할 때 내 실력과 진가를 더 드러내곤 한다"고 했다.

아래는 소 목사의 글 전문.

덩리쥔과 이선희

대만 집회를 갔을 때였다. 집회 관계자들이 대만의 전설적인 가수 덩리쥔(鄧麗君, 1953~1995)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덩리쥔이야말로 대만인의 가슴에 묻힌 불멸의 가수라고 말했다. 그래서 집회를 하는 동안 계속 유투브로 덩리쥔의 노래를 들어보았다.

과연 그녀는 뛰어난 음악성을 지닌 훌륭한 가수였다. 생전에 음반을 2억 장 정도 팔았으며 장례식 때 천만 명이 넘게 조문했을 정도라고 하니 정말 엄청난 사랑을 받은 가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회 때 <첨밀밀>이라는 그녀의 노래 제목만 이야기해도 "와" 하고 청중이 환호를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덩리쥔의 음악 혼과 아름다운 선율을 느껴보려고 그녀의 노래를 수없이 들어보았다. 하지만 중화권의 문화와 대중 예술세계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인지 이미 내 가슴에 인각되어 있는 가수 이선희의 노래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청년 때부터 이선희의 노래에 빠졌던 것은 아니다. 고학으로 신학교를 다니고 시골 벽촌에서 힘들게 교회를 개척할 때는 TV 한번 볼 시간조차 없었다. 그저 신학교를 오가는 버스에서 대중가요를 듣는 정도가 다였다. 바로 그때 인상적으로 들었던 노래가 이선희의 다. 그때도 '노래가 새롭고 정말 잘 부르네'라고 감탄은 했지만 완전히 매료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세월의 강물이 흘러 어느덧 중견의 목회자가 되어보니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지면서 버스에서 들었던 노래가 다시금 새롭게 내 마음에 다가온 것이다.

가수와 목회자의 영역은 다르지만 청중 앞에 선다는 점은 같다. 나는 그 많은 청중의 마음을 휘어잡으며 감동시키는 가창력과 무대 위의 카리스마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녀의 노래는 오직 종교 세계에 심취해 목회밖에 모르던 내 삶의 스펙트럼을 자극하는 신선한 파장으로 다가왔다.

세월을 역류라도 하는지, 이선희는 시간이 흘러도 어쩌면 그렇게 완숙하면서도 청아한 소리를 내고 폭발적인 가창력을 내뿜을 수 있을까. 그녀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그녀가 살면서 겪었을 고독과 외로움, 상처들이 그 애절한 소리의 혼과 그윽한 향기를 자아내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를 봐도 그렇다. 세상에는 덩리쥔처럼 감미롭고 조용한 목소리로 감동을 선사하는 설교자도 있고, 이선희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때론 카리스마 넘치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리는 설교자도 있다. 나는 음향이 잘 갖춰지고 정돈된 실내에서 부드럽고 잔잔하게 이야기를 전하는 설교도 하지만 넓은 체육관이나 장외에서 깊은 울림과 굵고 거친 음성으로 설교할 때 내 실력과 진가를 더 드러내곤 한다.

결국 설교도 노래도 시도 모든 것이 그 사람이 살아온 삶에서 피어나는 절정의 꽃이라 할 수 있다. 고독의 광야를 지나고 고통의 강을 건넌 자만이 시대의 혼을 노래하고 예술의 꽃을 피우며 대중을 울리며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

덩리쥔은 저음과 중고음을 천상의 음색으로 승화시켜 중화권의 음악 혼을 매혹시켰다. 그러나 과연 그 노래가 인생사 희로애락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깊은 울림을 주며 정서적 정화 작용까지 해주었을까. 내가 본 이선희는 남녀노소를 초월해 그 음색과 음악적 로맨스의 마력에 끌려 예술적 초탈을 경험하게 하는 저 대기권 밖의 가수다.

그녀는 밤하늘을 가르며 떨어지는 푸른 유성처럼 무대 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르는 열정을 보여준다. 이런 내 편견은 중화권의 문화와 대중 예술세계를 잘 모르는 한계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 어릴 적 젊음에 대한 그리움의 향수 때문일지도. 깊은 밤, 홀로 그녀의 노래를 다시 들어본다. 가슴 깊은 곳, 소리의 푸른 유성 하나 상처의 밤을 가르며 떨어진다. 봄을 기다리며 풀잎의 기도를 드리던 젊은 시절의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