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29) 황허(黃河, Yellow River) 문명(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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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29) 황허(黃河, Yellow River) 문명(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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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교수의 ‘빛의 환타지아’]

▲ 달기 ⓒsjy-art.org.bmp ⓒ뉴스타운

은(殷, Yin 또는 상/商, Shang)왕조(2/2)

은 왕조의 마지막은 하 왕조의 걸 못지않게 포악한 주(紂, Chou)가 장식하게 된다. 그는 술을 좋아해서 술에 빠질 정도로 마셨으며 여자도 좋아해서 달기(妲己)라는 미녀에게 푹 빠져 무엇이든 그녀가 하자는 대로 했다. 그리고 세금을 과하게 거둬들여 녹대(鹿臺: 금은보화를 보관하였던 누각임)에는 금은보화가 가득하였으며 거대한 창고에는 곡식이 넘쳐났다.

커다란 연못을 술로 채우고 주위의 나무에 고기를 매단 후 남녀를 발가벗겨 뛰어다니게 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잔치를 베풀었다. 이를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고 하는데 주는 누가 이에 대해 간(諫)하거나 원망을 하거나 하면 포락지형(炮烙之刑: 구리기둥을 활활 타는 숯불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기름을 바른 후 죄인을 그 위로 건너가게 하여 미끄러져 불에 타 죽도록 하는 형벌임)이라는 잔혹한 형벌로 처형하였으며 그래서 하 왕조의 걸과 함께‘걸주(桀紂)’라고 하면 지독한 폭군(暴君, despot)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 주문왕 ⓒ뉴스타운

당시 중국의 각 지방은 왕의 지배를 받는 제후(諸侯, feudal prince)라고 하는 권력자들이 다스렸는데 주의 제후이자 주(紂)의 신하 중 가장 높은 삼공(三公) 중의 하나에 서백(西伯: 서쪽지방 제후의 장(長)을 이르는 벼슬이름임) 희창(姬昌)이라는 매우 덕망이 높은 사람이 있었다.

삼공들 중 나머지 둘은 주에게 처형당하고 희창도 구속되었었으나 신하들의 노력으로 석방된 후 그는 밖으로 들어나지 않게 덕행을 계속하면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희창은 강태공(姜太公 :강자아(姜子牙), 강상(姜尙), 여상(呂尙), 여망(呂望), 태공망(太公望), 사상부(師尙父)라고도 부르는 인물로서 위수(渭水)가에서 물고기가 아니라 세월을 낚는다고 곧은 바늘로 낚시질을 하다가 늘그막에 희창에게 발탁되어 은을 멸하고 주나라를 창업한 일등공신이며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데 지금도 낚시꾼을 강태공이라고 하는 것은 이로부터 비롯된 것임)이라는 문무를 겸비한 인재를 만나 그를 국사(國師)에 임명하였다가 다시 국상(國相)에 임명하여 정치와 군사를 통괄하도록 하였다.

▲ 강태공 ⓒlib.pu.edu.tw ⓒ뉴스타운

그 후 강태공의 노력으로 희창은 더욱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만년에 이르러서는 은의 3분의 2를 장악하여 은의 도읍 조가(朝歌)에 바싹 다가감으로써 은을 멸망시킬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은을 채 멸망시키기 전에 큰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문왕(文王, Wen Wang)이며 그의 뒤를 이은 아들 희발(姬發)이 무왕(武王, Wu Wang)이다.

▲ 주무왕 ⓒ뉴스타운

무왕은 즉위 11년째인 기원전 1046년경에 군사를 일으켜 목야(牧野)라는 곳에서 은나라 군대를 크게 무찌르고 주를 죽임으로서 은나라는 망하고 주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주(周, Chou/Zhou)왕조

주나라가 은을 멸망시키고 국가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데 강태공 못지않은 공로자가 있었으니 그가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인 주공(周公, Zhou Gong) 단(旦, Dan)이다. 그는 효심이 두텁고 자애심도 깊었으며 문왕과 무왕 때에도 아버지와 형님을 잘 보필하였을 뿐만 아니라 형인 무왕이 죽은 뒤에는 어린 조카 성왕(成王)을 도와 섭정(攝政, regency)을 하면서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그는 섭정을 할 때 주위로부터 제위를 노린다는 중상을 많이 받았으나 무사히 위기를 넘기고 성왕이 성장하자 권력을 돌려주었다. 그는 고귀한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먹을 때 사람이 찾아오면 몇 번이라도 음식을 토했으며 머리를 감을 때면 머리를 움켜쥐고 기다리게 함이 없이 그들을 만났는데 이를 토포악발(吐哺握發)이라고 한다.

▲ 주공 단 ⓒ뉴스타운

주는 호경(鎬京: 지금의 서안(西安) 부근임)을 도읍으로 하고 왕은 하늘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았다고 하여 스스로 천자(天子, Son of the Heaven)라고 칭하였으며 대체로 은의 제도를 계승하는 한편 봉건제도(封建制度, feudal system)를 확립하였다. 즉 천자는 제후를 봉하고 봉토(封土 또는 영지/領地, feudal land)를 나누어주며 군사와 납세의 의무를 지도록 하는 한편 제후 일족이 대대로 그 권리를 세습하도록 하였다.

▲ 대전체 ⓒ뉴스타운

그리고 청동기 안쪽에 제후들의 토지 이름을 새겨 해당 제후들에게 분배하였는데 청동기에 문자를 새기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였으며 주 왕조는 이를 극비로 독점함으로서 왕조의 권위를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청동기와 같은 금속에 문자를 새기는 것은 사실은 은 왕조 말부터 있어왔는데 이를 금문(金文)이라고 하며 처음에는 글자 수도 아주 적었고 갑골문자가 사용되었다.

▲ 제단 ⓒ뉴스타운

그러나 나중에는 글자 수가 수 백자에 달하기도 하였고 주 왕조 중기부터는 대전(大篆, great seal script: 한자 서체의 하나임)이라는 문자도 사용되었다. 주는 예(禮, etiquette)를 중시하고 제후들이 그를 지키도록 함으로서 왕조의 권위를 굳혀나갔다. 여기에는 신하가 어전에 나갈 때의 예의를 비롯하여 조상을 모시는 건물의 크기나 제기의 사용방법 등 3,000가지나 되는 의례의 형태가 포함되며 또 궁정의 의식 등에 연주되는 음악도 이 무렵에 발달했는데 이 모든 것은 ‘주례(周禮)’라는 책으로 정리되었다.

▲ 제례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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