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통일의 새 장’, 북핵포기 이후에나 가능하다

지난 2월 9일 평창올림픽이 성대하게 시작됐습니다.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리에 개최한 이후 30년 만에 또 다시 동계올림픽을 개최함으로써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 월드컵 축구, 세계 육상선수권대회 등 4대 국제스포츠 행사를 모두 개최한 다섯 번째 나라가 됐습니다. 이번 평창올림픽에는 92개국에서 2920명의 선수들이 참가하여 17일간의 열전을 치르게 됩니다. 북한 선수단과 예술단, 대표단 등 5백여 명에 이르는 북한 주민들이 참가했을 뿐 아니라, 개막식 날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 4명의 고위급대표단이 참석하여 한민족의 경사를 축하했습니다. 특히 김여정은 김정은의 특사로 와서 김정은의 친서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자신이 직접 남북관계에 관한 의미 있는 얘기를 건넨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지난 9일 김정은의 전용기를 타고 한국에 온 북한 고위급 대표단 네 명은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처음으로 악수를 나눴습니다. 다음 날인 10일에는 청와대에서 문대통령이 주재하는 오찬에 참석해서 회담을 나눴는데요, 이 자리에서 김여정은 문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했습니다. 김일성 시대나 김정일 시대에도 유례가 없던 북한 지도자의 친서 전달이었습니다. 친서에서 김정은은 문재인대통령에게 평양을 방문해달라고 공식 초청했습니다. 또한 김여정은 문 대통령에게 “통일의 새 장을 여는 주역이 되시라”며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와 통일에의 염원을 밝혔다고 합니다. 김정은의 평양 초청에 대해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답변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앞으로의 여건’은 크게 두 가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국제사회와의 대북공조 스탠스를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 당국의 핵, 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것입니다. 먼저 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다는 것은 현 국면에서 유엔안보리와 미국, 일본, 유럽 연합 등 전 세계 대다수 국가들이 취하고 있는 대북제재의 공조노선에서 한국만 이탈하는 것을 뜻합니다. 때문에 한국 정부는 대북제재를 실행하고 있는 개별 국가 및 국제기구들에게 남북관계의 급진전과 한반도의 해빙 분위기를 설득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이러한 난제는 이번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곧바로 나타났는데요, 개막식 축하를 위해 참석한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북한 고위급대표단과 일체의 접촉을 거절했다고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펜스 부통령은 개막식 당일의 환영 리셉션에서 김영남과 마주 보는 자리에 배치됐으나, 5분 만에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펜스 부통령은 조만간 북한에 대한 더욱 강경한 추가제재가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밝혔고,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공감의 표시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그만큼 미국이나 일본 등의 나라들은 북한 당국에 대해 극심한 불신의 감정을 거두지 않고 있다는 얘기인데, 문재인대통령이 어떻게 국제사회의 강경한 대북제재 분위기에 역행하면서 평양을 방문할 수 있을 지, 그것은 앞으로도 많은 논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문제는 보다 본질적인 것입니다. 북한 당국의 핵, 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것인데요, 현재 국제사회가 강경한 대북 제재와 압박을 실행하고 있는 이유가 북한 당국의 핵, 미사일 도발 등 군사적 호전성 때문이고,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와의 공조 스탠스 때문에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곤란을 겪을 것이라고 한다면, 결국 북한 당국의 핵, 미사일 개발 문제가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남북관계 개선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이 두 가지 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나 남북정상회담은 국내적으로, 그리고 국외에서 많은 어려움에 부딪힐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영남, 김여정 등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은 2박 3일간 한국에 머물면서 ‘민족의 위상’ ‘통일의 새장’과 같은 장밋빛 가득한 얘기들을 많이 쏟아냈습니다. 한반도 평화, 민족 화합을 명분으로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런 얘기들이 북한 당국자들의 진심이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나 한민족의 위상을 세계만방에 떨치기 위해선 북한 당국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깨닫기 바랍니다. 김여정이 언급한 ‘통일의 새 장’은 북한 당국이 핵을 포기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