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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와 기분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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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17-12-08 17:39 조회4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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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와 기분의 차이

    기독교에서 가장 많이 쓰는 용어가 은혜입니다. 은혜란 단어 카리스는 신약성경에 가장 많이 쓰여진 말입니다. 은혜란 말의 의미는 은총, 호의, 매력, 총애, 덕택, 선의, 감사등 여러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동사 카리조마는 거저준다, 값없이 준다, 용서한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에 사용된 헤세드라는 말은 바람, 열망, 사랑, 친절, 자비, 인자의 뜻입니다. 그 외에도 즐거움, 만족, 기쁨, 고상함, 동정, 얼굴이란 의미의 단어가 쓰여지기도 했습니다.
    은혜는 자격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본질은 최고의 사랑이며 최고의 행복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복입니다. 그리고 영원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믿음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받은 자는 늘 감사하고 찬송하고 사명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오직 겸손하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윌리암 바클레이는 “은혜란 기쁨이나 즐거움, 쾌활이나 아름다움이란 영어의 매력이란 말과 깊은 관계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본래 있던 아름다움에 새로운 아름다움을 더한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은혜란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을 베푸시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베푸시지 않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뜻의 결정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배드린 후나 말씀을 들은 후에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라고 합니다. 또 부흥회에 참석하여 “은혜 받았다”, “큰 은혜받았다” 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기분이 좋았던 것과 은혜를 받은 것을 분간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기분이라는 것은 대상과 환경에 따라 마음에 생기는 심신의 감정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은혜를 받으면 기분도 절정에 이릅니다. 감사가 나오고 감격하게 되고 찬송하게 되고 사명에 충성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구분할 것은 기분은 다분히 자기 중심적 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기분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상대적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절대적입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많이 깨닫고, 깊이 깨달았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입니다. 그 깨달음이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그런데 무슨 말씀인지도 모르고, 단순히 그날 분위기나 설교가 자기 감정에 맞아서 기분이 좋은 상태를 은혜 받았다고 한다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은혜를 받으면 필연적으로 인격을 변회시키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삶에서 늘 감사하게 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영화롭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사랑을 깨닫는데 중점을 두기보다는 욕망과 감정을 자각하여 사람의 기분을 맞추어 주려는 인본주의가 득세하는 흐름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예배, 자기 감정의 충족을 위한 찬송과 기도는 은혜 받은 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한국 속담에 개도 닷새가 되면 주인을 안다는데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은혜를 깊이 깨닫지 못하면 영적 마비 환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깊은 샘물을 마시는 은혜의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믿는 신앙이냐 이용하는 신앙이냐?

    신영섭 목사
    우리는 신앙의 형태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믿는 신앙보다는 이용하는 신앙, 순종하는 신앙 보다는 돌이켜 자기 중심적인 신앙 스타일로 치우쳐 있는 경우가 있으나, 이를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말세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무정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기를 사랑하며, 감사치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상태입니다. 오늘날 이기주의적 사랑과 이기주의적인 형태의 신앙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책망보다 위로를, 책임보다는 자유를 선호합니다. 사실 책임을 무시한 자유는 방종이지 자유는 아닙니다. 또한 유기명 보다는 무기명적인 헌금을, 자신이 관리되기 보다는 자신을 그냥 내버려 두기를 원합니다. 종교가 악세사리화 되고 신앙이 필수적 이기보다 선택적이 되기 바랍니다.
    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민족성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마치 『지하 생활자』라는 작품에 나오는 “지구는 망해도 나는 커피를 마셔야 되는 거야” 하는 대화의 한 장면 처럼 개인주의가 극에 달했다고 해도 관언이 아닙니다.
    자기 기분과 성격이 신앙의 표준이 될 때 신앙은 절대적이지 않고 사물화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참된 신앙이 아니라 자기 우상에 빠져있는 것이고 자기 절대화의 노예이며 하나의 이용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기분에 맞지 않으면 교회도 마음대로 옮겨 다니고, 내가 답답하고 필요하면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극성스럽다 할 정도로 기도도 해보고, 직분이 사회 진출에 도움이 되고 사업에 활용가치가 있다면 투자를 해서라도 노력하고 운동하는 인본주의적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참 신앙은 주님이 내 심령과 삶의 주인이고 나는 종이 되어 명령에 오직 아멘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을 부르짖는 기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마음의 자세가 먼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나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지 못하고 오직 목적 성취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면, 그리고 아쉬운 일이 없을때는 하나님을 의뢰하거나 간절한 기도가 없다면 이용하는 신앙입니다.
    신앙이 자신의 이용물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초기신앙은 어린아이 처럼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날마다 성장하고 성숙해져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거철만 되면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이용하려는 사이비 정치 신앙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참 신앙은 하나님만이 아시고 천국가봐야 알겠지만 열매는 무르익을 수록 드러나게 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이용하는 신앙이 아니라 믿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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